INTERVIEW 2020. 9. 17. 10:25

보그걸 김재욱/김동욱 인터뷰

국내 발매 잡지 보그걸 2007년 10월호 인터뷰 내용입니다. 사진으로는 읽기 힘들어서 타이핑했습니다.

 

KIM JAE UCK

V.G. 어제는 뭐했나?

김재욱 셋 다 피곤해 보이지 않나? 사실 지철이 형(공유)이 동생들 모이라고 집합시켰다. 억지는 손톱만큼도 없고 다들 진정으로 보고 싶고 서로가 좋아서 모인다. 어제는 일이 늦게 끝나서 자정쯤 갔더니 이미 다들 취해있더라. 지각했다고 벌주를 배로 마셨다. 원래 술을 잘 안 마시는데 이 드라마 촬영하면서 많이 늘었다. 몇 번 기절하고 나니 늘더라.

V.G. 술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 좋은 매개체라고?

김재욱 난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절대 같이 술 안 마신다. 그러니 술이 인간 관계의 시작은 될 수 없다. 이미 좋은 사람들과 더 좋아질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원래 폭넓은 것보다 좁고 깊은 인간 관계를 좋아하는 편이다. 

V.G. 당신의 인간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나?

김재욱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먼저 다가간 적은 없고, 이성과 동성에 상관없이 첫 대화의 직감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한두 마디만 주고받아도 이 사람이 나와 코드가 잘 맞겠다 싶은 그런 느낌. (V.G. 취향의 문제일까?) 물론 취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밝히는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공감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한번 매력을 느껴 푹 빠지면 가차없어진다. 주변의 얘기도 귀에 안 들릴 정도다. 물론 그 콩깍지가 오래가진 않지만, 반대로 모두가 극찬하는 미인이더라도 나와 안 맞으면 흥미 없다. 그래서 내가 까다롭다는 소리를 듣는 건가.

V.G. 그런 까다로움은 꼭 노선기를 닮은 것 같다.

김재욱 선기 캐릭터에 내 실제 모습이 반영된 건 분명 맞다. 내가 최대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배려해준 거다. 원래 바르던 블랙 매니큐어도 지우지 말고 옷도 평소 입던 대로 입으라고 하셨다. 일본에서 살았던 이력을 아시곤 혼혈아로 설정해주셨고, 내가 선기 역을 맡음으로 인해 본래 설정한 캐릭터와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V.G. 그럼 김재욱은 곧 노선기라고 안심하고 생각해도 되나?

김재욱 사람들은 참 재미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생각이 간혹 틀리기도 하지만 내가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아니니, 정 그렇게 믿고 싶으면 믿으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뭐, 이 드라마로 날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내가 곧 선기라고 단정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 한 가지 욕심 내는 건, 차기작에서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맡았을 때도 그 캐릭터 역시 지금의 선기처럼 '김재욱스럽다'고 해주는 거다.

V.G. 첫 드라마였던 '네 멋대로 해라'의 베이시스트 역할도 다분히 김재욱스러웠다.

김재욱 스무 살에 한 거다. 잊혀졌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좀 놀랐다.

V.G. 그 역시 캐릭터처럼 실제로 밴드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김재욱 참여를 제안하는 박성수 감독님께 난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더니 그냥 평소에 밴드 하듯이 연기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했는데 웬걸, 말이 무섭다고 촬영 내내 연기자가 아니라 진짜 밴드 멤버처럼 했다. 감정 없이 대사를 방백하는 신간이 반복되니 너무 힘들었다. 종영하니 속이 다 시원했을 정도로. 나완 연기가 절대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게속 연기 생각이 스멀스멀 나더라.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결심보다 한 번 더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맘에 더 가까웠다.

V.G. 연기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밴드 '러닝 하이' 활동은 잠시 접은 건가?

김재욱 멤버들이 모두 나와 실용 음악을 함게 전공한 대학 친구들이다. 내가 모델과 연기자를 겸하듯 그들도 세션을 계속하고 있다. 생계 유지비는 다른 경로로 벌고 음악은 우리끼리 좋아하는 걸 하자는 주의다. 그리고 그 밴드 이름, 정정해야 한다. 멤버들이 워낙 변덕이 죽 끓듯 해서 밴드 이름만 수십 번 바꾸다 결국 무명으로 남았는데, 회사에서 프로필 작성하며 밴드 이름을 굳이 대라고 하시길래 그냥 그때 듣고 있던 곡 이름을 말한 게 일파만파 퍼졌다. 멤버들에게 러닝하이가 뭐냐며 욕만 많이 먹었다.

V.G. 음악도 연기도 겉으론 무심해 보이지만 진정 즐기며 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재욱 내겐 진심으로 즐긴다는 기분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억지로 하면 보는 사람도 재미없지 않나? 연기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트레인스포팅>에 열광하는데 내가 아무리 이완 맥그리거처럼 연기한다고 해서 그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건 재미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보여주며 살아야지, 다른 배우의 답습은 싫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없게 살고 싶진 않다.

 

KIM DONG WOOK

V.G. 촬영 내내 말이 없다. 역시 당신은 애교 하림이 아닌 건가?

김동욱 그게 환경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촬영할 땐 말을 좀 하는데, 죽마고우들을 만나면 말을 더 안 한다. 편한 친구들은 원래 성격을 아니까 그러려니 한다. 학창 시절에는 더 무뚝뚝하고 낯도 많이 가렸는데 연기를 하다보니 그런 성격은 별 도움이 안 되더라. 요즘은 하림의 이미지가 있어 그런지 그냥 웃기만 해도 사람들이 애교로 봐준다. 사실 애교 지수는 낮은 편인데….

V.G. 사람들이 당신과 하림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선 어떤가?

김동욱 작품이 사랑받았으니 하림을 잊지 못하는 것도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담이 되는 건 대중들의 시선이 아니라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차기작에서 걸맞는 부응을 해야 한다는 거다. 외적인 면에 치중하다 정작 연기에 소홀해질까봐 내심 걱정된다. 그래서 학교도 최대한 열심히 나가려고 한다. (V.G.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4학년인 것으로 안다.)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 맘에 들었다. 우리 학교가 내신과 실기 위주로 뽑기 때문에 수능은 뒤로 한 채 실기에만 몰두했었다. 입시 때문이었지만 그땐 연기하는 그 자체가 좋았다.

V.G. 무엇이 그렇게 연기에 몰두하게 만들었나?

김동욱 고3 때 영화 <킬리만자로>를 보고 굉장히 감동받았다. 누군가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 배우란 직업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배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뒤로는 운명처럼 연기밖에 눈에 안 보였다.

V.G.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그동안 선택한 작품이나 캐릭터의 색깔이 좋게 말하면 변신의 귀재,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이던데, 작품 선택의 기준이 뭔가?

김동욱 전작들은 내가 선택한다기보다 '선택받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내 의사가 개입되지 않은 건 하나도 없다. (V.G.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발레교습소>. 내겐 첫 장편 영화였고 연기 경험도 부족했던 때라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공부는 가장 많이 됐다. 다행히 윤계상, 이준기 같은 동료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아서 즐겁게 작업했고 별탈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원래 욕심이 좀 많아서 다른 배우들이 잘 안 하고 기피할 법한 역을 제안받으면 잘 하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그런 역할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다른 캐릭터보다 몇 배는 더 공부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다 실력이 되니까 즐겁다.

V.G. 연기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구파 스타일인 것 같다.

김동욱 학교에서 처음 연기를 배울 때 남들보다 기본이 풍부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라도 확실하게 캐릭터를 분석해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무턱대고 본능에 맡기기엔 내가 봐도 연기력이 불안했으니까. 그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직관적인 느낌에 따라 연기하고 싶은데, 아직도 너무 생각한다. 드라마 초반에 제일 힘들었던 것도 그 점이었다 하림이 왜 그런 말을 하고 행동하는지 내가 이해가 되어야만 안심하고 연기했는데, 드라마가 워낙 스피디한 작업이다 보니 그런 고지식한 자세가 걸림돌이 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계산적인 맘을 버리고 애드리브도 좀 했다.

V.G.  시간이 흐르고 필모그래피가 더 길어져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건 뭔가?

김동욱 사람들과의 정. 난 정이 많은 사람이 좋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다 사람끼리 하는 작업인데 같은 상황이라도 정이 없으면 더 힘들어진다. 술도 그런 정을 못 느끼는 사람하고는 같이 안 마신다. 내가 술 마시자고 말하는 건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거나 더 알고 싶다는 뜻이다.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절대 술 약속 안 잡는다.

V.G. 어떤 사람을 보면 같이 술을 마시고 싶어지나?

김동욱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나에겐 호감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 

V.G. 어떤 점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건가?

김동욱 외모보다 서로 대화하는 도중에 느끼는 첫인상이 강하다. 아무리 짧고 형식적인 대화라도 진심이 묻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나? 오판일 때도 있지만 결정은 굉장히 빨리 내리는 편이다. 내가 원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이런 거에 감동받고 감격한다.

V.G. 사소한 것에도 감동받는 스타일인가 보다.

김동욱 굉장히 작은 일에도 그런다.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내가 새벽 5시에 스케줄이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4시 반에 문자를 보낸 거다. 오늘 촬영 잘 하고 끼니 거르지 말라는 일상적인 내용이었는데 난 그시간에 그녀가 일부러 일어나서 내 생각을 해줬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런 문자들을 1~2년이 넘도록 간직해둔 적도 있다. 헤어지고도 쉽게 못 잊는 편이어서 그런 것 같다. (V.G. 그렇게 감동받으면 반대로 감동을 주기도 하나?) 큰 이벤트는 별 재주가 없어 못하지만 자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아, 사실 그래본 지 너무 오래됐다.

V.G. 배신자와도 단칼에 의절할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감동적으로 사과하면 다시 볼 수도 있는 건가?

김동욱 그런 면에선 정말 단순하다. 나에게 심하게 군 사람이 있어서 저 사람 진짜 나쁘구나, 이제 안 봐야지 생각했더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나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닌데 실수했나 보다, 앞으로 안 그러면 되지 그러고 만다. 

V.G. 배우로서 감동적이었던 사람을 꼽는다면?

김동욱 조니 뎁.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이 신선한 배우다. 가위 손과 해적과 초콜릿 공장 주인이라니! 난 그의 다음 행보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다른 캐릭터를 오가면서 매번 질투 날 정도로 잘하기까지 한다. 나문희, 신구 선배님도 마찬가지다. 그분들은 어떤 역을 맡든지 자신만의 분위기를 감추지 않으면서 캐릭터의 느낌도 최대한 살린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도 존경스럽다.

V.G. 시각 장애인과 동성애자, 커피 프린스를 오간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동욱 하고 싶은 역할이 너무 많다. 내게 오는 역할은 모두 경험이고 운명이라고 생각해서 힘들거나 어려운 역이라고 거부하진 않는다. 난 완벽한 역할만 맡고 싶지 않고 대중에게 그런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벌써부터 대중에게 완벽한 배우라고 평가받는다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그런 생각은 성장하는 데 방해만 된다. 난 내가 어느 순간 '이거면 됐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때론 실패하고, 때론 혹평을 받을지언정 훗날 배우로서의 인생에 충분히 공부가 되는 작품이라면 언제든 하고 싶다. 이 직업, 한두 해 하고 말 게 아니니까. 

V.G. 그럼 차기작에서는 하림과 전혀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는 당신을 기대해도 되나?

김동욱 그건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리 하림처럼 트렌디한 역할이어도 대중에게 하림이 아닌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보이게끔 할 거라는 것. 그게 배우의 자세이자 역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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